[월간 일러스트] 인터뷰 (2011년6월)

1. 내게 말을 건내는 바람
나는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바람을 좋아한다.
스르르~ 책도 잘 읽는 바람은 친구처럼 늘 내 귓가에서 소근 소근 재잘거리듯 지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큰 소리로 내 치마 자락을 날려 부끄럽게도 한다.
머리카락으로 내 뺨을 스다듬는 바람이 좋다.
때론 창문 너머 나뭇 잎들을 춤추게 하며 깜짝 쇼를 보여주는 바람은 나를 행복하게도 만들어준다.
때론 놀아주려고 왔다면서 깜빡 잠들었는지 인사도 하지 않는 바람도 있지만…
나는 바람(wind)이 좋다. 또 이런 바람(wish)도 좋다.

2. 다리가 되어주는 사람들
삶 가운데로 쑤욱~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수식어로도 설명 할 수 없는 큰 단어인 엄마도 있고
언젠가 한번쯤은 꼬옥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도 있다.
“우와~ 내가 이런 분을 만나다니!” 싶을 정도의 깊은 떨림을 주는 사람도 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기꺼이 통로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묵묵히 다리로 머물러주는 좋은 사람들…
때론 살며시 마음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을 통해 오히려 작은 내 모습을 만날 수 있으니 그 또한 내겐 다리가 되어준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이들도 있다.
특히 아기의 모습으로 내게 왔지만 오히려 서툴고 부족한 엄마를 작은 일상 하나 하나를 통해 키워준 아들들도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를 만나 행복해” 라고……
또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고백을 듣는 사람으로 머물기를 바라면서……

3. 나의 어린 시절 낙서 
그림에 70년이라고 적혀있으니까 내가 3살때 그린 그림이다. 아니 그림이라기보다는 낙서다.
어설프다 못해 웃음이 피식 나오는 동그라미 사람 얼굴이다.
낙서 옆에는 낡디 낡은 편지 한 장이 있다.
그 보잘 것 없는 낙서를 “참 훌륭한 그림이다” 라고 칭찬해주신 친할아버지의 편지를 나는 참 좋아한다.
그리고 소중히 여긴다.
40년의 긴 시간이 흘러 누렇게 변한 편지와 낙서가 나란히 내 책상 위 벽에서 할아버지의 사랑을 아직도 전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이 선물은 내 부르심과 관련된 의미 있는 열쇠이고 내가 걸어갈 길을 보여준 단서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할아버지의 그 어린 손녀는 마흔이 넘어도 어린아이의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할머니가 되어도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그렇게 그림 그리기를 소원한다.

4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라는 직업
세상엔 참 여러 직업들이 많이 있다. 어느 직업 하나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 많은 직업 중 나는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라는 직업이 좋다.
이 직업은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그림과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손 내미는 특기와 말 건내는 취미로 살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직업은 정년퇴임이라는 마지막이 있지만 이 일은 시간이 흘러 나이를 쌓아갈수록 풍성해지는 직업이니
참 행복한 직업이다. 이렇게 사랑스런 직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듯 매력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할머니 작가를 꿈꾸고 있으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5. 작은 책 그러나 크게 말하는 책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책이 좋다. 어렵고 복잡한 책보다는 쉽고 누구나 주인공이 되어지는 책을 나는 좋아한다.
그림과 이미지들이 많다면 더욱 좋다.
그중에서도 작년에 일본을 들렀을때 내 마음을 사로 잡은 책이 있었다.
고슴도치를 키우는 작은 아들이 떠올라 집어든 책이였다.
화려한 그림은 아니지만 사각사각 연필소리가 났다.
한 여자아이가 고슴도치를 안기 위해 털을 깍기도 하고 파마를 시켜 자신이 원하는 고슴도치의 모습으로 만든다.
그러나 소녀는 그 모습이 고슴도치가 아님을 깨닫고 본래 고슴도치의 모습을 보며 네 모습이 최고라고 말한다.
까칠까칠한 고슴도치의 털에 꽃 한송이를 꽂아준 소녀가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책이 우리의 태어난 모습이 사람들이 말하는 어떠함과 상관없이 최고라고 크게 말한다.
때론 나도 내 옆에 선 사람들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힘들어했는데
나로 누군가의 가시에 꽃을 꽂을 수 있는 용기와 기다림을 주었다.
화려하지도 않고 작지만 이렇게 누군가에게 길이 되어주는 책을 나는 좋아한다.

6.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어릴적 두 아들이 만들어 준 쿠폰이 있다. 큰아들이 8살일때 준 쿠폰엔 “초인안마 5분”
이렇게 적혀 있다. 귀염둥이 유치원생이였던 6살의 작은아들의 쿠폰은 “엄마 하루에 100곤 줄께요”
“ 엄마 내가 뽀뽀해주깨요” 이다. 너무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마음이 담긴 이 조그마한 쿠폰이 나는 너무 좋다.
아르바이트 했다며 “ 가르쳐 주셔서 감사해요 저 이제 돈도 벌어요” 하고 작은 끈팔찌 하나를 건낸 제자의 마음도 나를 흐믓하게 한다.
하트X1000000 이라고 적힌 엽서와 단호박차를 건낸 조카벌되는 동생의 마음도 그렇다. 핸드폰 화면가득 하트를 잔쯕 찍어 보낸 문자도…
그 마음들을 어떻게 돈으로 살 수 있을까…나는 정말 정말 정말 귀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한 줌의 햇살, 콩크리트 틈새를 뚫고 나온 여리고 작은 꽃, 깍이고 깍여 동그랗게된 조개껍질들을 나는 좋아한다.

7. 새로운 것
나는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아니 내가 모르는 영역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좋다.
그 부분역시 내가 관심 있는 파트이겠지만… 늘 변함없고 한결 같은 것도 귀하다고 생각하고 참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들이 쑥쑥 자라나듯 새롭게 변화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당신은 힘들어한다고 남편도 말하곤 한다.
익숙해진 재료와 스타일을 내려 놓고 또 다른 모습으로 시도해 보는 것이 흥미롭다.
그래서 무언가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도 나 자신에게는 견고한 바위 같은 부분들이 많이 있다.
이제는 그것들 또한 내려놓고 새로운 모습으로 훨훨 날고 싶다.

출처- 월간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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